-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 19

- 요즘,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

요즘,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은 혼자만의 공간에 혼자 있기다! 철저한 고독을 느끼고 싶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은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빼앗아 버렸다. 코로나로 내 생활 패턴은 완전히 바뀌었다. 3월부터 계속 재택근무 중이다. 재택근무만 하면 좋으련만 아이도 함께 집에 계속 있다는 게 문제다. 아이와 나 둘만 집에 있게 되면 친정엄마라도 SOS 해서 계속 셋이 같이 생활하면 그나마 편할 텐데, 더 문제는 남편도 재택근무라는 거다. 3월 한달 내내 우리 가족 3명은 24시간 함께 집에 있었다. 막상 사무실로 출퇴근을 안 해도 되니까 불필요한 외출 준비와 이동시간이 줄어들고, 아이와도 오랜 시간 보낼 수 있어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재택근무와 가정 보육에 나는 점점 지쳤다..

- 나만의 고질병?!

나만의 고질병 리스트. 1. 빨리빨리 병 '병'이라는 단어를 듣고 다행이 몸의 이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ㅋㅋ 나는 성격이 급하다. 내가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회사에 입사하고 난 스물 다섯. 그 전까진 학교 생활만 하니깐 별다르게 내가 급한 성격이라는 걸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함께 협업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니, 동기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OO아, 너처럼 성격 급한 애는 처음 본다, 내가 아는 애 중에 네가 성격 제일 급해 진짜!" 난 순간 띠용~~ 했다. "뭐? 내가 성격 급하다고~?~" "그래, 넌 말도 너무 빨리하고, 맨날 빨리빨리~! 라고 말하잖아!" 내 성격이 급하다는 걸 스물 다섯에야 깨닫다니.. ! 신기한 건 동기의 말에 딱히 반박할 ..

- 이만하면 괜찮다.

3주차 과제 - ‘무엇’을 버리고 얻은 변화의 이야기 이만하면 괜찮다. 이 글은 나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완벽해지고 싶었던 나’와의 이별기이다. 난생처음 우울하다는 느낌과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1년여를 보낼 땐 육아 휴직 기간이 지나고, ‘내’ 이름, ‘내’ 원래의 직업과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 우울감을 사라지리라 믿었다. ‘회사 일은 정말 육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커피도 마시고, 배고플 때 밥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고, 말이 통하는 ‘어른’ 사람들과 대화 다운 대화도 나눌 수 있잖아? 나 정말 복직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거야!’ 야심 차게 다짐하며 24시간 육아에서 벗어날 날들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복직 후에도 나는 자주 먼 산..

- 코로나 일상

코로나 19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3월 23일이면 출근할 줄 알았는데, 어린이집 휴원도 4월 5일까지로 연장되었다. 나의 재택근무와 가정보육 기간도 늘어나 부렸다......ㅠㅠ 원래 내 계획은... 이렇게 야심차게 계획을 세웠으나.... 생각보다 너무너무 너무 피곤하다...ㅠ 내 계획의 문제점은, 욕심이 과했다. 밤에 11시 넘어서까지 버티기가 힘들고, 밤잠은 적어도 7시간 이상은 확보되어야 다음날 맑은 머리로 일도 육아도 계속할 수 있다. 결국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더 취침시간으로 변경하였다. 그랬더니 글쓰기&독서 시간이 하루 1시간밖에 확보가 안된다. ㅠ 회사일이 갑자기 늘어나서 업무 시간에는 계속 앉아서 일해야 하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그 이후에 쉴틈없이 찾아오는 육아 타임엔 "안아줘..

- 다시, 여행을 꿈꾸다.

다시, 여행을 꿈꾸다.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은 시내까지 나가려면 1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하는 외곽 동네였다. 논과 밭만 보이는 창가에 앉아 사춘기 소녀는 '외국' 은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해했다. 그 시절에 여행은 일 년에 한 번 명절에 서울 외할머니 댁에 가거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한비야 님의을 읽고 '나도 저렇게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지',배낭 하나 메고 유럽 여행도 가볼 테야'다짐했다. 대학만 가면 나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꿈을 꾸었고,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물론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한 푼도 안내는 행운이 찾아왔고..

-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일상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코로나 대체 언제 끝나???"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재난 문자! 나는 격리 대상자도 아닌데 왜 집안에 격리되어있는가? 이것은 거의 가택연금 수준이다. 처음에는 확진자가 30명 즈음에서 종식되는 줄 알았다. 2월 마지막 주 어린이집 방학에 맞추어 속초로 여행 가려고 리조토 예약도 해놓고 설레며 여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천지에서 확진자가 퍼졌단다. 날이 갈수록 확진자는 증가하고, 속초 숙소는 "대구에 여행 갔다 왔다" 고 전화했더니 환불 수수료도 없이 바로 취소해줬다. 이런 웃픈 일이..ㅠㅠ 확진자가 늘어가더니 어린이집은 휴원을 하고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다. 벌써 2주째 재택근무중이다. 재택근무까지는 괜찮은데 가정보육도 함께라는 게 문제다. 도저히..

- 아이를 낳고서야 달라진 내 인생

아이를 낳고서야 달라진 내 인생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수능 점수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대학을 가고 나선 어느 회사에 취업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취업을 하고 이제 결혼을 하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그 날 이후로 내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모든 일에 '내'가 제일 우선인 이기주의자였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마인드와 함께 한마디로 콧대 높은 차도녀였다.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됐지 다른 사람의 상황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팀원들의 배려 없이 타인이 잘못한 것들은 콕 집어냈다. "이거는 OO씨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라고 팀원들에게 말하거나 모두가 협력해서 해야 하는 일에는 “제가 할 일은 다 했는데..

- 나를 소개하는 세 가지 키워드

코로나19 때문에 2주째 집안에만 갇혀 있으며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밖순이였다. 출산 후 1년간 힘들었던 것도 어쩌면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집안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 앞 카페라도 나가거나 산책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계속 누워있고만 싶은 데다 살림은 재미도 없고, 하기도 싫다. 우리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주말 내내 밖에 돌아다닐 수 있을 테니 기대된다. 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을 좋아한다. 내가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성장이 멈추고서야 깨달았다. 취미 컬렉터처럼 회사 생활이 지겨울 때 쯤 조금조금씩 여러 가지 들을 배웠는데, 뜨개질..

-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시작된 ‘사춘기’ 흔히들 사춘기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온다고 하는데,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시작된 것 같다. 30살에 결혼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엄마가 되어갔다. 3년이 지나자 나만 아이가 없었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임신소식을 알려왔고, 주변에서는 나에게도 좋은 소식이 없냐며 물어왔다. 당연히 결혼만 하면 아이가 생기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였다. 텔레비전 속에나 나오는 난임부부가 내가 될 줄이야! 병원에 가서 난임 치료를 받았는데, 그 당시엔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나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운이 좋게 한 번의 치료과정에 임신이 되었고, 정말 정말 기뻤다. 그 후에 다가올 시련(?)은 생각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