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과제 - ‘무엇’을 버리고 얻은 변화의 이야기
이만하면 괜찮다.
이 글은 나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완벽해지고 싶었던 나’와의 이별기이다.
난생처음 우울하다는 느낌과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1년여를 보낼 땐 육아 휴직 기간이 지나고, ‘내’ 이름, ‘내’ 원래의 직업과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 우울감을 사라지리라 믿었다. ‘회사 일은 정말 육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커피도 마시고, 배고플 때 밥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고, 말이 통하는 ‘어른’ 사람들과 대화 다운 대화도 나눌 수 있잖아? 나 정말 복직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거야!’ 야심 차게 다짐하며 24시간 육아에서 벗어날 날들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복직 후에도 나는 자주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존에 하던 집안일과 육아에 직장 업무까지 더해지니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아이의 등 하원까지 혼자 도맡아 하다 보니 만성피로감에 시달렸다. 자주 무기력함에 빠져 들었고, 무언가에 쏟을 열정도 에너지도 소멸해 갔다. 이러다간 나 자신도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났고, 뭔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삶의 긍정적인 기운과 열정을 되찾고 싶었다. 용기를 내 사내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낳고 보니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요즘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에, 다양한 학원에,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 내가 아이를 낳은 게 맞는 건가 싶어요. 아이만을 잘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서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긴 싫어요. 그렇다고 회사일을 아이가 없던 예전만큼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침엔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이미 기운이 빨린 상태이고, 또 얼른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뛰어서 퇴근을 해요. 결국 육아도 회사일도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어요.”
“OO 님은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최고가 아니면, 완벽할 수 없으면 전부 실패라고 생각하시나요?~”
상담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받고 나서 머리를 도끼로 맞은 것처럼 “땡~”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 우울함의 원인을 그제야 깨달았다. ‘난 부자가 아니니까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을 거야’, ‘난 육아도 해야 하는데 새로운 업무를 받더라도 잘 해낼 수 없을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가득했다. 잘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은 완벽하게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현실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나는 꼭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업무도 무조건 잘 해내야 하는 건가?’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향은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잘 키운 아이의 기준은 각종 육아서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와 ‘영재인 아이’, 인스타에서 보이는 아이의 예쁜 옷, 예쁘게 꾸며준 아이의 놀이방, 방긋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책 속의 엄마들과 나를 비교하고, 각종 SNS에 올라오는 깨끗한 육아 환경과 장난감이 널 부러진 집에서 떼 부리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비교했다. 육아서처럼 인스타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해준다고 반드시 아이가 잘 크는 것도 아닌데 나를 원망하며 가슴에 스스로 생채기를 냈다.
회사에선 미혼인 회사 동료들과 나를 비교했다. 예전에는 나도 저 사람만큼 일했던 것 같은데, 복직 후엔 작은 실수들이 계속해 이어졌다. 실수가 곧 실패라도 된 듯 동료들의 평가를 걱정했고, 계속되는 실수엔 밤새 잠을 설칠 정도로 나를 자책했다. 동료들에게 “퇴근 후 집에 가서 뭐하세요?”라고 종종 물었다. “그냥 쉬고, 간단히 저녁 먹고, 요가 학원 갔다가 넷플릭스 보면서 쉬어”라는 답변을 들으면 그 여유로운 일상이 너무 부러워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가 업무에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저 사람은 집에서 편히 쉬고 출근하니 다음날 회사에서도 좋은 컨디션으로 집중해서 업무를 할 수 있겠지’, ‘나는 집에서 겨우 아이 씻기고 같이 잠들면 바로 다시 출근인데..’ 내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하고 업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일인데, 회사에서 남들이 인정할 만큼 성과를 내는 직장인의 모습을 꿈꿨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떨어트린 내 자존감은 저 땅속 깊은 곳 어디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지원 작가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란 책을 읽고서야 남과 비교하며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프레임을 버릴 수 있었다.
저자는 내 상태에 대해 명쾌한 진단과 해법을 내려줬다.
“
당신은 평판과 평가에 민감하고 자신의 실수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평가 염려 완벽주의 유형의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실수나 실패에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실패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불필요한 염려와 자기 비난을 반복하며 오늘의 불행에 몰두하고 있진 않나요?
자기비판적인 완벽주의가 결국 매일의 짜증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경험하는 실패담, 죄책감, 수치심, 낮은 자존감 같은 감정들은
결국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염려와 뒤엉켜서 당신을 자꾸만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당신이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나만큼은 내게 관대해져도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완벽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완벽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이만하면, 괜찮아요.
완벽은 됐고 그냥 꽤 괜찮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 됩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전전긍긍하며 살지 마세요.
일이나 사랑, 자녀 양육의 실패가 당신의 가치를 낮추나요?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내가 불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 한 후에
'그래서 어쩌라고?' 정신으로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어 즐기세요.
”
고구마를 10개쯤 먹은 듯한 답답했던 내 마음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켠 것처럼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저자가 내게 해주었다.
이제는 조그만 실수쯤은 덤덤해지려 노력한다.
실수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평가할까 전전긍긍했었는데, “앗, 제가 실수했네요~ 수정해서 다시 배포할게요~”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넘긴다. 세상에서 실수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고,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늘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젠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내 실수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관심이 없듯이 말이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 행복한 엄마만 있을 뿐.
내가 아무리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 한 들 그것은 허상 속에나 존재할 뿐이다.
행복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면 내 아이도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영화보기” , “책 읽기”, “글쓰기”, “아이와 깔깔거리고 웃기” 등 하루하루 즐길 수 있는 목록들을 찾아보자.
아직도 매일 불안과 내 실수를 마주하며 삶에 허덕이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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