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

- 이만하면 괜찮다.

ByulNa 2020. 3. 30. 22:07

 

3주차 과제 - ‘무엇’을 버리고 얻은 변화의 이야기

이만하면 괜찮다.

이 글은 나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완벽해지고 싶었던 나’와의 이별기이다.

난생처음 우울하다는 느낌과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1년여를 보낼 땐 육아 휴직 기간이 지나고, ‘내’ 이름, ‘내’ 원래의 직업과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 우울감을 사라지리라 믿었다. ‘회사 일은 정말 육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커피도 마시고, 배고플 때 밥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고, 말이 통하는 ‘어른’ 사람들과 대화 다운 대화도 나눌 수 있잖아? 나 정말 복직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거야!’ 야심 차게 다짐하며 24시간 육아에서 벗어날 날들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복직 후에도 나는 자주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존에 하던 집안일과 육아에 직장 업무까지 더해지니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아이의 등 하원까지 혼자 도맡아 하다 보니 만성피로감에 시달렸다. 자주 무기력함에 빠져 들었고, 무언가에 쏟을 열정도 에너지도 소멸해 갔다. 이러다간 나 자신도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났고, 뭔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삶의 긍정적인 기운과 열정을 되찾고 싶었다. 용기를 내 사내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를 낳고 보니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요즘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에, 다양한 학원에,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 내가 아이를 낳은 게 맞는 건가 싶어요. 아이만을 잘 키우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서 어렵게 취업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긴 싫어요. 그렇다고 회사일을 아이가 없던 예전만큼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침엔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이미 기운이 빨린 상태이고, 또 얼른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뛰어서 퇴근을 해요. 결국 육아도 회사일도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어요.”

“OO 님은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최고가 아니면, 완벽할 수 없으면 전부 실패라고 생각하시나요?~”

상담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받고 나서 머리를 도끼로 맞은 것처럼 “땡~”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 우울함의 원인을 그제야 깨달았다. ‘난 부자가 아니니까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을 거야’, ‘난 육아도 해야 하는데 새로운 업무를 받더라도 잘 해낼 수 없을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가득했다. 잘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은 완벽하게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현실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나는 꼭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업무도 무조건 잘 해내야 하는 건가?’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향은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잘 키운 아이의 기준은 각종 육아서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와 ‘영재인 아이’, 인스타에서 보이는 아이의 예쁜 옷, 예쁘게 꾸며준 아이의 놀이방, 방긋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책 속의 엄마들과 나를 비교하고, 각종 SNS에 올라오는 깨끗한 육아 환경과 장난감이 널 부러진 집에서 떼 부리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비교했다. 육아서처럼 인스타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해준다고 반드시 아이가 잘 크는 것도 아닌데 나를 원망하며 가슴에 스스로 생채기를 냈다.

회사에선 미혼인 회사 동료들과 나를 비교했다. 예전에는 나도 저 사람만큼 일했던 것 같은데, 복직 후엔 작은 실수들이 계속해 이어졌다. 실수가 곧 실패라도 된 듯 동료들의 평가를 걱정했고, 계속되는 실수엔 밤새 잠을 설칠 정도로 나를 자책했다. 동료들에게 “퇴근 후 집에 가서 뭐하세요?”라고 종종 물었다. “그냥 쉬고, 간단히 저녁 먹고, 요가 학원 갔다가 넷플릭스 보면서 쉬어”라는 답변을 들으면 그 여유로운 일상이 너무 부러워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가 업무에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저 사람은 집에서 편히 쉬고 출근하니 다음날 회사에서도 좋은 컨디션으로 집중해서 업무를 할 수 있겠지’, ‘나는 집에서 겨우 아이 씻기고 같이 잠들면 바로 다시 출근인데..’ 내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하고 업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일인데, 회사에서 남들이 인정할 만큼 성과를 내는 직장인의 모습을 꿈꿨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떨어트린 내 자존감은 저 땅속 깊은 곳 어디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하지원 작가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란 책을 읽고서야 남과 비교하며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프레임을 버릴 수 있었다. 

저자는 내 상태에 대해 명쾌한 진단과 해법을 내려줬다. 


당신은 평판과 평가에 민감하고 자신의 실수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평가 염려 완벽주의 유형의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실수나 실패에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실패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불필요한 염려와 자기 비난을 반복하며 오늘의 불행에 몰두하고 있진 않나요?
자기비판적인 완벽주의가 결국 매일의 짜증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경험하는 실패담, 죄책감, 수치심, 낮은 자존감 같은 감정들은
결국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염려와 뒤엉켜서 당신을 자꾸만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당신이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나만큼은 내게 관대해져도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완벽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완벽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이만하면, 괜찮아요.
완벽은 됐고 그냥 꽤 괜찮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 됩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전전긍긍하며 살지 마세요.
일이나 사랑, 자녀 양육의 실패가 당신의 가치를 낮추나요?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내가 불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 한 후에 
'그래서 어쩌라고?' 정신으로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어 즐기세요.

 고구마를 10개쯤 먹은 듯한 답답했던 내 마음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켠 것처럼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저자가 내게 해주었다. 

이제는 조그만 실수쯤은 덤덤해지려 노력한다.

실수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평가할까 전전긍긍했었는데, “앗, 제가 실수했네요~ 수정해서 다시 배포할게요~”라고 쿨하게 인정하고 넘긴다. 세상에서 실수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고,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늘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젠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내 실수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관심이 없듯이 말이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행복한 엄마만 있을 .

내가 아무리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 한 들 그것은 허상 속에나 존재할 뿐이다.

행복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면 내 아이도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영화보기” , “책 읽기”, “글쓰기”, “아이와 깔깔거리고 웃기” 등 하루하루 즐길 수 있는 목록들을 찾아보자.

 

아직도 매일 불안과 내 실수를 마주하며 삶에 허덕이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