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

- 다시, 여행을 꿈꾸다.

ByulNa 2020. 3. 18. 16:07

다시, 여행을 꿈꾸다.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은 시내까지 나가려면 1시간 정도 버스를 타야 하는 외곽 동네였다. 논과 밭만 보이는 창가에 앉아 사춘기 소녀는 '외국' 은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해했다. 그 시절에 여행은 일 년에 한 번 명절에 서울 외할머니 댁에 가거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한비야 님의<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읽고 '나도 저렇게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지',배낭 하나 메고 유럽 여행도 가볼 테야'다짐했다. 대학만 가면 나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꿈을 꾸었고,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물론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한 푼도 안내는 행운이 찾아왔고, 그 계기로 부모님께 등록금이 안 드니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졸랐다. 우리 집 형편에 어학연수는 무리였지만, 흔쾌히 엄마, 아빠의 희생과 성원으로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갈 수 있었다.

그건 내 인생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다. 밴쿠버에 있으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로키 마운틴,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아름다운 호수와 산을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와~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내가 이런 곳도 못 와보고 죽었으면 어쩔 뻔했지? 꼭 돈 많이 벌어서 나는 꼭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살 거야!"다짐하며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첫 해외 살이로 나는 비로소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진정한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는 느낌. 한편으론 외롭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느낌. 하루하루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 내 발길이 닿는 느낌. 태어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맛보는 느낌. 이런 새롭고 짜릿한 경험들은 내 청춘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결혼 후 찾아온 출산과 육아는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갔다. 

휴직 후 육아를 하며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행을 못 가는 것이었다.

초 예민한 우리 아기는 텔레비전이나 인스타그램 속에서나 존재하는 어딜 가나 방긋방긋 웃고 있는 인형 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어딜 가도 우렁차게 울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여정이란 트렁크 두 개를 싸도 모자랄 정도의 짐과 함께여야 가능했다. 아직 미혼인 회사 동료들의 휴가 기간 여행기를 들을 때면 나는 더 초라해지고 우울했다. "여행이 주는 살아있는 기분을 나도 느끼고 싶단 말이야!" 하며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다. 

여행을 즐기는 여정 속에서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가 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지만 낯선 곳의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특이한 가구와 소품들이 가득한 현지 레스토랑에서 가이드북에서 익힌 그 나라의 언어로 "그라시아스~", "메르시~" 더듬더듬 말해도 다들 너무 귀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웃음을 지어 준다. 평소에는 자신 없어하는 외모도 상관없다. 막 찍어도 화보가 된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면 친구들이 "어디 놀러 갔어?~"멋지다~부럽다~"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하트 수가 올라간다. 내 마음은 우쭐해지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여행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 빛나는'스타'. 

이제 아이가 두 돌도 넘었고, 두발로 걸어 다니고 어른 반찬도 함께 먹으니 여행이 가능하리라 희망에 부풀었다. "해외여행은 무리라면 국내라도 가리!" 라며 야심 차게 속초 리조트도 예약해 놓았는데 코로나19가 내 발목을 잡았다.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집 앞 마트도 마스크에 손소독제까지 챙겨 후다닥 다녀와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던 중,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오늘 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반복되는 생활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 조건이다

하지만 그 공통 조건 하에서 그저 시간을 버티며 순응하고 살 것인지 내일의 가장자리를 넘어 내일로 나아가려 노력할 것인지,

그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건 각자의 몫이고 각자의 능력이다."

-최장순, <기획자의 습관>

나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불평불만하지만 사실은 모두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라는 것. 그 하루를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나, 집 근처 야외로 나가보자.

멀리 갈 수 없다면, 가까운 곳부터 가보는 거다. 휴양림, 동네 뒷산, 탄천 산책로 등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은 주변에도 많다.

확 트인 곳은 코로나 감염 위험도 적을 것이다. 

, 미리 여행 계획을 세워보자.

여행은 준비 과정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가고 싶은 나라, 도시를 정하고 책을 읽고 가이드북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자. 

여행 TV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블로그 여행기를 읽어보며 랜선 여행을 떠나자. 

코로나가 끝날 때 즈음 어디든 바로 떠날 수 있게 말이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여행을 상상할 수 있어 신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서,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와 싸우고 계시는데, 고작 여행 못 간다고 불평이나 하다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 덕분에 난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코로나19야! 빨리 없어져 줄래? 나 여행 좀 가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