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

- 5월의 책! 2020 제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ByulNa 2020. 5. 29. 17:34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국내도서
저자 : 강화길,최은영,김봉곤,이현석,김초엽
출판 : 문학동네 2020.04.08
상세보기

 

 

얼마 전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들을 모아 놓은 이 소설집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어릴 때는 소설 속 이야기들이 그저 재미있기만 했는데, 이제야 소설을 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딸에게 들려주는 여자 이야기>에서 김슬기 작가는 말한다.

인간의 내면을 주로 다루는 소설은 이보다 섬세할 수 없는 촉수로 우리의 마음을 언어화한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말로 표현되지 못했던 많은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생생한 묘사로 펼쳐지는 소설은 우리를 타인의 가슴 안으로 들어 앉힌다.
우리는 치밀하게 지어진 성 안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삶을 살고 경험한다.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일, 주변을 맴돌다 흩어지던 말들을 뚫고 타자의 마음에 깊숙이 접근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마치 내 마음인 것처럼 느껴 보는 문학적 체험은 공감의 연습이자 현실의 재창조로 작동한다.

 

서른 중반에서야 알게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라니 ㅎㅎ

그러면 어떤가. 내 인생에 또 다른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니 만족한다.

 

이 책의 가장 첫번째 편인 강화길 작가의 '음복(飮福)'이라는 소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 음복(飮福) : 제사를 지내고   제사에  음식을 나누어 먹음. 

 

 

주인공인 세나는 결혼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시할아버지의 제사라니.. 그리고 제사 준비는 모두 시어머니가 하시는 풍경.

바로 우리 큰집의 모습이다. 얼마 전 아들 둘을 모두 장가보내고 며느리가 둘이나 생긴 우리 큰어머니는 이제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고 한다.

난 어릴때부터 친척 많은 종갓집의 제사, 명절을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절대 절대 할아버지가 첫째 아들인 집, 아버지가 첫째인 집, 첫째 아들은 정말이지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고작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거지만, 친척이라는 이유로 들어야 하는 잔소리들이 싫었다. 

그냥 할 말이 없어하시는 말이고, 일 년에 두어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이지만 "공부는 잘하니?" "올해 몇 살이지?" "취업했니?" 등....

잘 모르는 어른들이 와서 물어보는 것 같았다. (물론 명절에 받는 두둑한 용돈은 좋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모이는 장소가 우리 집이 아니고 큰아버지댁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집에 온갖 친척들이 다 모여서,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그리고 명전 전날 음식을 준비할 때면 할머니는 꼭 남자 사촌형제들은 빼고 유일한 딸인 나에게만 "여자는 이런 것도 다 할 줄 알아야 돼~, 이러 와서 전부 치는 것 좀 도와라~. 상에 이것 좀 갖다 놓아라~" 하는 말도 너무 싫었다.

다른 사촌들, 내 동생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요리나 음식 나르는 것을 안 해도 되고, 나는 딸이라서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니.

어린 마음에 내가 더 공부도 잘하고, 더 똑똑한데 왜 나만 이런 '노동'을 해야 하는 거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돌하게 "할머니~ 전 그런 거 안 해도 돼요, 전 돈 많이 벌어서 사람 쓸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제사 지내는 풍경에 '유'씨 집안 제사에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일하는 건 모두 며느리들 뿐.

소설 속 세나도. 세나의 엄마도, 세나의 시어머니도, 고모도.

모두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딸이어서, 며느리여서 제사의 가정의 집행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난 다짐했다. 뉴스에 나오는  "닷새 동안 이어지는 설 연휴를 이용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오늘 하루 인천공항에서는 개항 이래 가장 많은 승객이 출국했습니다."의 명절마다 공항에 가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이다.

우리 남편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도 제사를 안 지내고, 친척들이 멀리 살아서 명절은 각자 가족끼리 여행하며 보낸다는 점이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제사 인가.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는 것, 제사에 참석하는 걸로 수많은 부부들이 갈라서고 다툰다는 기사가 나온다.

우리 제발 이제 우리를 위해 음식을 하고, 조상에 대한 감사는 간소하게 지내는 게 어떨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