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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의 기쁨과 슬픔

ByulNa 2020. 5. 12. 09:20
일의 기쁨과 슬픔
국내도서
저자 : 장류진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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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도서관에서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빌리려고 했었는데,

예약하다 보니 18년에 출시된 핫한 소설책을 예약하게 되었다.

아니, 이토록 재미있는 소설이라니!

아기를 재우고 고단한 몸을 소파에 뉘이며, 손에 잡히는 책 (대여&구매로 쌓여있는 책들...ㅋㅋㅋ) 아무거나 들고 한번 읽어 볼까 하려는데

"어머, 웬일이야, 이 소설 뭐지, 왜 이렇게 재밌지?"

하며 시작했다가 혼자 깔깔대고 웃다가 자정을 훨씬 넘기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난 이 책을 왜 이토록 재미있게 느꼈던 걸까 생각해보면,

소설 속 인물들이 마치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주변 인물들 같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였다.

지금 회사를 다니는 이삼십 대 직장인들의 삶을 이토록 재미있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다니!

정말 소설가는 감히 천재가 아닐까? 아니면 정말 직장생활을 한 후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쓴 건지, 본인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주변의 인터뷰로 관찰로만 이런 이야기를 쓴건지 너무 궁금해진다.

나에게 더 재미있게 다가왔던 부분은 내가 일하고 있는 판교역이나 기존 회사 건물이었던 한남동 일신빌딩 등이 소설 속 주인공이 일하는 곳이거나 면접 본 후 첫 출근 하는 사무실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판교역에서 높은 '엔씨소프트' 사옥 건물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나 판교역 주변의 묘사 그리고 IT 회사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소설 속 주인공은 나름 수평 문화를 지향한다는 IT회사를 다니고, 영어 호칭으로 불리지만 묘하게 윗사람들이 편하게 말 놓으려고 영어 호칭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걸 느끼기도 한다. 수평 문화라고 하더라도 사내에는 엄연히 나이, 직급에 따라 흔히 말하는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주인공은 홍콩 조성진 연주회 티켓을 구매하며 '그래,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말한다.

직장인들의 이토록 소소한 삶의 기쁨과 슬픔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다니!

 

<백 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에서는 백 한번이나 이력서를 쓰고 드디어 추가합격으로 첫번째 출근을 하게 되는 주인공이 나온다.

취업 준비생 시절 정말 이력서를 100장은 썼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자기소개서를 쓰며, 학점, 토익, 각종 자격증 스펙 쌓으며 면접 스터디에 참여하고,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난 왜 이럴까" 인생 첫 좌절을 맛보았다. 

시험만으로 취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대학 입시만 준비하며 초, 중, 고를 보낸 우리들이 알았겠냐고...ㅠ

그 첫 출근길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러면서도 두려웠는지 나의 첫 출근길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오늘 내 삶에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 이력서를 쓰고, 1차, 2차 면접 준비는 다신 못할 거 같다. 

 

소설을 읽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겠다. 이 소설이 왜 이렇게 재미있었는지도.

바로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삶.

주인공들의 삶 속에서 찾는 소소한 기쁨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취업 준비, 사랑 등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는다.

'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니구나, 나만 힘든 건 아니었어, 그래, 이런 거라도 있어야 계속 회사 다니지 '

 

매일 직장생활에서 오는 수많은 물음표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었을까? 잘하는 일일까? 

직장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십 년 뒤? 그 후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며 오늘도 다시 힘을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