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세상을보다

- 김지은 입니다

ByulNa 2020. 4. 15. 23:56
김지은입니다
국내도서
저자 : 김지은
출판 : 봄알람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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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아이를 낳고 다음날이었다. 

연일 뉴스에선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고, 병실에서 뉴스를 보는데 '김지은'씨가 나왔다.

"헐~ 웬일이야!" 하며 놀란 마음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정말 '안희정'이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했었다. 진보적인 행보와 그의 소신 발언들과 젊은 정치인 이미지가 좋았다.

성폭력이라니!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구나 싶었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정치인은 없구나 싶었다. 

뉴스룸 인터뷰 즉시 가해자는 페이스북에 잘못을 시인하는 글을 올렸기에, 나는 당연히 '유죄'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김지은'씨에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적인 사진들도 올라오고 그녀가 불륜이었다는 가해자 아내의 호소문이 연일 보도되었다. '김지은'씨는 침묵했고,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뉴스와 언론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연일 쏟아지는 보도내용들과 1심 결과는 나같은 사람들 에게 "정말 뭐가 있었던거 아니야? 정말 연인관계였나?"하는 의심이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김지은'씨가 얼마나 거대권력과 싸워왔는지 마스크가 일상이 된 지금이지만 미투를 폭로한 이후부터 얼마나 처절하게 버텨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그 일을 회고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이렇게 기록물로 남겨주어 너무 감사하다.

 

그 기록들을 보며 '바로 내가 김지은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김지은이다.

그 권력의 힘앞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김지은씨처럼 용기내 고백하고 싸워나갔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당했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그 자리가 아니라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당하지 않을 일이라는 보장이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군대에서 정치판에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10년전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 작은 보수적인 회사에서도, 직장상사로부터 성희롱 발언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었는데, 당시 나는 그 발언이 매우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웠음에도 누군가에게 신고하거나 가해자에게 따져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갓 입사한 사원이고, 그 사람은 팀내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저녁 회식의 술자리엔 항상 여직원들을 팀장님 옆, 앞 자리에 앉으라고 시켰다. 그 분위기속에서 싫다는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옆팀에 대리님은 1년여 기간이나 직장상사에게 스토킹을 당해왔었는데, 입사한 같은 팀 신입사원에게도 똑같이 하는 것을 보고 후배까지도 그렇게 피해자로 만들 수 없어 결국 그 상사를 인사팀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그 스토킹 상사는 바로 해고 되었으나, 사내에서는 피해자 여사원들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별일 아니었는데 크게 만들었다는 둥, 실제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이 없는 사람들 까지도 신고했다는 둥, 신고한 피해자들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성희롱, 성추행으로 인한 징계 공지를 두세번은 더 본 것 같다.  같은 조직내 회식에서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이유로 여자 직원의 허벅지를 만진다던지, 사적인 질문을 한다던지 하는 일 등이다. 

미투 운동 이후에서야 사람들은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던 일이었다.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여성이 몇이나 될까.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지만,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용감하게 꺼내는 것 자체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김지은'씨의 용기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김지은'씨가 아니었다면, 안희정을 지지하고 응원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할 정도다.

오늘 총선 투표를 하면서, 정치인들의 앞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그 권력이 쥐어졌을때 뒤에서는 왕처럼 군림하며 자신의 캠프의 참모들 지지자들을 대하는 또다른 '안희정' 들이 많겠지 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어쩌면 영화 보다 더 영화같은 실제의 정치판의 뒷모습도 잘 보여준다. 경선 캠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지자의 당선이 목표이고, 당선이 되어야만 자신들이 나중에 한자리씩 하게 될테니, 비록 추악한 모습,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눈감고 못본걸로 하며 자신들의 안위만 챙겼을 것이다. 이런 조직문화가 어디 정치판 뿐이려냐.

우리는 누구나 '김지은'이 될 수 있고, 어디서나 '안희정'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조직을 경험할 수 있다.

나 자신의 경험도 생각해보고,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땠을지 대입해보며 읽게 된 책이다.

'김지은'씨 정말 멋지다. 나라면 이렇게 책으로 기록하지 못했을 거고, 용기내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기만 했을텐데 정말 용기 있고 멋지신 분인거 같다.

힘든 시간들도 잘 이겨내시고,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을 하고 계신다고하니 안심이 된다.

더 일찍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했던 내가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