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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엄마되기의 민낯

ByulNa 2019. 1. 3. 23:13
엄마 되기의 민낯
국내도서
저자 : 신나리
출판 : 연필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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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이 시대의 다른 영역처럼 '성과'로 측정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안에 놓여졌다.

그래서 다들 잘하는 거 같은데 나는 왜 못하는지 스스로를 들볶았다.

아이들이 제 각기 이듯 엄마들도 모두 다르다는 걸, 그 당연함을 몰랐다.

엄마 마다 처한 상황, 할 일의 양, 애씀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수월한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음을 몰랐다.

육아는 각자의 능력이나 마음가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와 엄마의 기질, 신체 나이와 체력, 가족들의 협조, 주변 사람들의 성향, 경제적 상황, 거주지의 환경과 사회의 복지,

너무도 많은 조건이 작은 차이를 좌우한다.

온갖 상황들이 얽혀 하루하루의 육아가 만들어진다. 겉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 놓인 각양각색의 상황을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정말 몰랐다.

아이는 기쁨이고 행복이인데 그렇다면 아이를 만난 나는 너무 행복해야 하는데 너무나 우울하고 공허했다.

나는 모성이 없는 사람인가 의심했다. 아이는 이쁘고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렇지만 육아는 나와는 안맞았다. 

아니, 내가 처한 상황과 내 기질에 육아는 힘들고 어려운 것이였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NO다.

그렇지만 다인이를 만난 지금 다시 돌아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우리 아기를 만나겠지. 

다시 처음부터 키운다면 아에 육아휴직을 쓸거면 친정에 들어가거나. 출산휴가만 쓰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정에 맡기는 걸 선택하겠다. (그만큼 너무 싫었다는 이야기임...ㅠㅠㅠ)

육아의 범위는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까지만 일까 그렇다면 목욕 후 욕실 정리와 청소는 가사일까?

잠시 잠깐 아이를 보고 웃고 놀아주고 하면 너무너무 이쁘겠지... 조카 보는 것처럼..


https://brunch.co.kr/@shinnarious/83

내가 둘째를 낳을 수 없는 이유


=> 저자의 고민과 이유들이 너무 공감된다.

둘째도 셋째도 키울 수 있는 집 부럽지만, 좋아 보이지만, 나는 못한다. 난 하기 싫다.

- 남편이 육아 휴직을 쓴다.

- 남편이 저녁 7시 안에 집에 온다.

- 친정이 옆동이다. (시댁은 아기를 못보심..ㅠㅠ)

- 내 몸이 건강하고, 체력이 뒷받침 된다.

- 둘째가 동성이 아니여도 괜찮은가? NO!!

- 내가 일을 그만두어도 괜찮은가? NO!!

- 남편도 늦게 오고 가족 도움이 없어도 혼자 둘을 키울 수 있는가? NO!!!!

- 외동이라 후회하고 안 좋은 점들을 감수 할 수 있는가? YES!

- 그리고 결정적으로 육아를 즐기는 편이 아님!! (남편은 즐기던데 아에 눌러 앉아 육아를 하시지 왜 회사에서 맨날 야근하는지 모를일.....)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자기 위안보다 포기가 더 낫다! 무엇을 더 포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살림과 육아도 힘들었지만 내가 '잉여 인간'이 된 것 같은 자괴감에 괴로웠다.


많은 사람이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가치를 얻는지 언급하는데, 나는 '나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없이 생명 유지가 불가능한 타인을 돌보는 와중에, 정작 자신은 수면과 식욕조차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 수백 일 동안 지속되는 경험.

인정과 보상은 물론 내적 성취를 느끼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을 심지어 내돈 들여가며 하기. 그게 육아였다.

아이 돌보기, 삼십 년 넘게 살아오며 겪은 일 중 가장 어려웠다.

원래 아이를 좋아한 사람에게도 24시간 육아는 힘겨울 테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며 살아온 나에게 나홀로 육아가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쌓아온 세계가 완전히 완전히 무너졌다. 쓰나미가 휩쓸듯이.

예전 나는 목표가 생기면 계획 세우고 세부사항 다듬고 실행에 옮기고 수정하면서 한 단계씩 나아갔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내 삶을 기획할 수 있음에 의심이 없었다. 그래서그리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를 잘 길들인 능력자 엄마라면 동의 못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주는 대로 먹고, 주는 대로 입고, 이끌어주는 대로, 가르치는 대로 한다는 그 쉽고도 당연해 보이는 모든 일이 어려웠다.

내 몸조차 마음대로 못 했다. 혼자 아이를 보는 동안 먹고 자기는 물론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 운동, 친구 만나기, 돈벌이까지.

어느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사회적 관계망이 모조리 찍겼고 발 딛고 살아온 지반이 허물어졌고 정체성이 사라졌다.

사회적 자아도 나의 이름도 지워진 채 살아가는 시간, 아이가 주는 기쁨과 행복과는 별도로 나에겐 어둠, 정지, 퇴보의 시간이었다.


돌봄 노동을 통해 겪는 자아 분열, 때로는 인격의 퇴행, 가시적 성장의 멈춤, '반 성장'은 오로지 직진만을 허락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긍정과 성장만을 찬미하는 발전주의 사회에서 극히 희소하고 귀중한 경험이다. 내가 뭉개지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타인의 느린 걸음 또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돌봄의 시간, 나를 지워가는 시간, 그 침잠의 시간 속에서 우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아이가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종종 나는 내가 지워지는 암담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육아는 엄마와 아이 둘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아이의 기질, 주 양육자의 성향과 체력 이외에도 주변 환경, 배우자와 가족의 육아 참여, 복지제도,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등 여러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오늘 하루의 육아를 만든다.